저의 혼수 식기세트는 광주요입니다. 고심 끝에 고른 첫 그릇이기에 애정도 남다른데요. 그 무렵 나난작가와의 콜라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뭐야? 종이꽃인 거야?? 이런 것도 작품이라고? 하며 그 당시에는 광주요의 마케팅이 참신하다는 기억 정도로만 남았었는데, 문화예술 공부를 시작하면서 다시 만나는 나난 작가는 문화민주주의의 향유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예술가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과 소통하는지, 그 방법과 과정들을 알아보기 위해 4월 끝자락 서울행의 첫 일정은 신사역 8번 출구와 가까운 이길이구 갤러리로부터 시작합니다.
이길이구에서는 나난 작가의 2019년 페이퍼 플라워 시리즈 '롱롱타임 플라워'로 연을 맺은 바 있습니다. 이것은 그녀의 대표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컷팅 플라워를 창의적으로 재조합할 수 있는 코너까지 마련됐습니다.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나눔과 교감에 있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접점을 만드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작품의 대상에는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가 꼭 존재합니다. 이번 티타임에서도 한 잔 마실 수 있는 공간들이 오브제인 것처럼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의자에 손이 가 앉고 싶었던 분위기. 아늑한 그곳에 머물며 '차 한잔을 마시는' 그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결국 작가는 미술은 단순히 갤러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는 모든 곳에 편재한다 생각했고 지금까지 우리 주변에 활기찬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 나난작가는 꽃을 사랑하니깐 이번 티타임에도 꽃이 등장한 거가? 봄이라서 그런 것인가? 다소 궁금했습니다. 왜 매화꽃이 등장했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차중 매화꽃차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소재가 주제성, 작가의 예술성과 잘 조합되었을 때 오는 감흥도 무척 좋았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작가가 건네어 주는 차 한잔을 당장 제가 마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티타임 시리즈는 종이 한지를 캔버스와 결합하여 나난스러운 미학적 관점이 도드라집니다.



티백이 유리티팟에 담겨있는 걸 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났습니다. 너무 맛있어 보였거든요. 평소에 차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티 타임을 예술향유로써 즐긴 이번 경험은 지나칠 수 있는 일상적 경험을 다시금 내적 감성을 긍정적으로 자극시켜 줬습니다. 전시 주제가 일상과 가깝다 보니 작품을 감상하는데 편했던 부분도 있고요.
종합하면 이 새로운 연작 시리즈는 매화, 한국의 전통차 문화 등 전통 도상을 자신만의 해석법으로 소재의 다양성과 변주의 방식을 통해 전개시켜 더욱 흥미롭습니다. 구상과 추상적 모티브가 스스럼없이 뒤섞이고, 오브제와 이미지가 교차하는 등 그녀의 작업은 모두 한국적미에 대한 물음과 탐구를 담아냅니다.



작가는 타 인터뷰에서 어떤 계기로 차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과거에 우리 민족은 차 마시는 것을 즐겼습니다. 현대에서는 그 차가 커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인당 전 세계 2위의 커피 소비량을 나타내는 국가가 한국이 되었고요. 작금의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를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어쩌면 우리나라는 차를 좋아하는 민족이 맞을 수도 있고, 차를 핑계로 카페에 머물러야 하는 고안과 시간이 필요한 것 일 수도 있다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저도 이 사회현상에 속한 한 사람으로서 ‘티 타임’이 현대 인간의 삶에 어떠하나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고 차를 마시는 현상과 그 이유를 작품과 전시에 녹이려고 했다고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의 현대예술가로서 표현할 수 있는 그 차를 마시는 시간-티타임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과거 우리 선조들의 다화(이인문, 심사정, 정선, 정약용 선생님들의 그림)도 찾아보게 되고, 결국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저의 사유가 작품으로, 현대성을 띈 티백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산시청람 (주경 안견)
차를 든다는 것은
산을 마신다는 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두 귀를 닦고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혀끝에 와닿는 삽상한 미각,
입안에 고이는 담백한 고요
차를 든다는 것은
평화를 든다는 것이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돌에 낀 이끼
차를 든다는 것은
천년의 고요를 든다는 것이다
차 한잔은 쉼을 든다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저도 올해 학업이라는 큰 도전과 더불어 개인적인 많은 일들이 생겼습니다. 일다경(一茶頃)이란 말은 한 잔의 차를 마실 정도의 사이라는 뜻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입니다. 오늘도 빡빡한 일상 속에 내 작은 꿈 티백 하나 넣고 따뜻한 온기를 채워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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